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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화가 나고 평상 시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모든 일들에 짜증이 섞여지는 날.
내겐 어제가 그런 하루였다.

평상시보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 출근버스에 올라타자 마자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짜증이 일었다.
평상시 즐겨 앉는 버스 맨 뒤 좌석이 아니라
버스 중간 즈음 내리는 문 앞의, 서서 가는 사람들에게 내내 시달려야 하는 좌석에 앉아
한 시간이 넘는 출근 길을 버텨야 할때도 기분이 별로였다.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전화로 휴대폰 착신 전화를 걸어 놓으니
이때다 싶어 울려대는 ‘초고속 인터넷 바꾸세요’, ‘저희 은행 론 서비스를 받아보세요’ 하는
원치 않는 OB 콜들만 잔뜩일때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간간히 웹 문자매니저를 통해 확인해 본 휴대폰 문자도 유달리 한가득한 스팸 문자에 짜증이 일었다.

진행해야 하는 기획서의 일정이 자꾸만 늦어져 팀장님에게 한 소리를 들을때부터..
내 상태는 대 놓고 가라앉고 있었다.
다른 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오류로 발생한 문제 처리하랴..
파트 리더랍시고 기획 업무 외의 각종 이슈들에 대한 F/U 하랴..
하루에도 몇차례 씩 진행되는 미팅들 다녀오고 나면 하루가 끝나버리는 통에..
벌써부터 끝냈어야 할 기획서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고…
사실 하고 싶고 하면 재미난 프로젝트였다면 기획서 작업에도 불이 붙었을지도 모를 일었지만
요청부서의 요청상황도 불명확하고, 별로 땡기지 않는 프로젝트라 진행이 더딘것을 알고 있기에 짜증은 더 컸다.

예정했던 일정에서 3일을 더 벌어 놓고 설 전 기획완료로 보고했지만..
또 산처럼 쌓여있는 미팅 일정들 안에서 그 일정도 미트시킬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마음속으로는 이거 설 연휴까지 끌고 가겠구나를 이미 짐작하고 있는 상황이었을거다.

새해 계획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꺼내면서 지각없이, 야근 없이 칼퇴근을 목표로 했었건만..
벌써부터 내 생활은 저녁 굶고 9시까지 야근 상태로 지속이었다.
금주 중 오픈시켜야 할 또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어김없이 저녁을 굶고 1차 테스트를 끝내고 개발자에게 전달하고 시계를 보니 9시 반.
이 상태로 또 기획서 작업을 할 생각을 하니 울화가 치밀어 그대로 덮고 퇴근.

퇴근길이나마 좀 편하게 가고 싶은 맘에 3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올라 탄 퇴근 버스 안.
서서 가던 한 아저씨가 모든 사람들에게 여봐란듯이 큰 소리로 통화를 한다.
아이팟의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아저씨의 전화소리를 벗어나려 발버둥하는데..
내 옆자리 사람이 내리고 좌석이 생기자 이 아저씨 잽싸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더 크게 전화를 한다.
평상시엔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주는 젠하이저 커널형 이어폰도 이 아저씨의 큰 목소리에는 당할 도리가 없다.
쉴 새 없이… 30분 이상을 통화해 대는 아저씨 덕에..
나도 모르게 화가 커지고 만다. 참기가 어렵다.
내려야 할 정류장보다도 훨씬 전 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 얼른 버스가 집 앞에 날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내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급기야 입에서 한 마디가 새어 나온다.

“짜증나”

그냥 만사 짜증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