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 매니아는 무엇으로 사는가?

벅스뮤직에서 읽어보다가 공감가는 부분도 있고…퍼왔음.

글/오공훈(aura508@unitel.co.kr)

‘매니아(mania)’라는 단어는 참으로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열광(熱狂)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보듯, 매니아에는 필연적으로 ‘미쳤다’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 그대로 ‘미쳤다’는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성(理性)’이라 불릴 요소는 말끔히 사라지고, ‘감정’이라 불리는 정신상태가 정도 이상으로 고양된 상황을 뜻하는 것이리라. 이렇게 되면 시쳇말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황이 된다. 어느 특정한 대상을 향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감정적 초월의 상태.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통상적인 의미의 ‘매니아’에는 감정, 또는 느낌의 범주로만 묶을 수 없는 독특한 면모가 포함되어 있다. 진정한 매니아는 ‘학구적’인 태도가 첨가되기 때문. 아니, 학구적인 미덕은 완전한 의미에서의 매니아를 결정시키는 방점으로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학구적’이란 단어는 일반적인 ‘애호가’, 또는 ‘빠순이/빠돌이’와 결정적인 차이를 이루는 심대한 키워드다. 모두 다 특정 사물(여기서는 음악, 영화, DVD, 무협지, 만화, 문학, 책, 춤, 자동차, 게임, 총기류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대상이다)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두고 있지만, 그 사랑의 양상은 퍽 다르다.

사랑의 대상에 대한 태도의 ‘열정’적 측면으로 볼 때, 겉으로 드러나는 애정 표현은 단연 ‘빠순이/빠돌이’가 압도적이다. 대상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집착이나 다름없는 과잉 애정 상태를 보이며, 때로는 도를 지나쳐 ‘스토커’의 경지에 다다르기도 한다.

애호가’의 경우는 ‘빠순이/빠돌이’의 극단적 행태와는 상당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빠순이/빠돌이’가 한마디로 ‘목숨을 거는’ 단계의 난폭한 삶을 위태위태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애호가’는 ‘즐기는 태도’를 유지하는 부류를 지칭한다. 음악이면 음악, 영화면 영화 모두, 따분하고 때로는 괴로운 인생의 ‘청량제’로 삼는 이들을 뜻하는 것이다. 애호가란 애정의 대상을 말 그대로 즐길 뿐이지, 거기에 과도한 의미나 집착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반인’들이나 다름없는, 즉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자들은 아니다. 애호가들 역시 나름대로의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대상에 대해 ‘깊게’ 빠지려는 태도를 경계한다. 한마디로 ‘쿨’한 삶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가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선천적인 기질이나 취향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어느 대상에 심각하게 빠져본 경험이 있어, 그 ‘중독’의 상태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태도를 바꾼 탓일 수도 있으리라. ‘객관적’으로 보면, 결국 ‘애호가’들이 인생을 피곤하지 않게, 사랑의 대상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언급한 부류에 비해 매니아들은 훨씬 복잡하고, 실로 ‘다단계적’인 양상을 보인다. 매니아들의 사연은 구구절절 하고도 복잡다단하다. 인간이란 불가피하게 ‘운명’이란 굴레에 얽힌 채 살아가게 마련이지만, ‘매니아’들에게는 그 운명의 틀이 더욱 강렬하게, 때로는 몹시도 가혹하게 다가온다. 대개의 경우(이 확률은 99% 이상이다), 매니아의 인생을 걷기로 ‘선택’받은(당한?) 사람들은 이 선택의 길로 향하게 되는 ‘운명적인 순간’을 반드시 맞이하게 되어있다. 마치 무거운 망치로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 첫 순간부터 ‘맹목적인 애정’의 폭풍 속으로 단숨에 뛰어드는 ‘빠순이/빠돌이’나 서서히 달구어지는 애정의 패턴을 침착하게 키워가는 ‘애호가’들과는 달리, ‘매니아’들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하지만 넋까지 잃게되지는 않고 “저 대상을 ‘탐구’해야겠다”는 강렬한 사명감을 동시에 품게되는 그런 운명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필자의 예를 들어보자.
어느 날 여름,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듣게 되었다. 그 동안 들어왔던 그렇고 그런 ‘팝송’들과는 차원이 다른,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대단히 심오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음반인 것 같았다.

여기서 상황은 중대한 ‘갈림길’을 맞이하게 된다. “이거 뭐 이래?” 싶어 음반을 방구석에 내던져 버리고 잊던지(또는 mp3 파일을 지우던지), 아니면 “아무래도 좀더 들어봐야겠다”는 이상한 ‘의무감’에 빠지게 되던지. 당연히 매니아의 운명을 점지받은 이들은 “더 들어보자”라는 운명을 선택하게 되고, 자꾸만 반복하여 듣게 된다. 처음엔 이게 도대체 왜 좋은지 괴롭기만 하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자꾸만 듣고 또 듣는다. 왜 이래야만 하는지는 자기자신도 잘 모르겠다. 남들이 ‘전설의 명반’으로 침이 튀도록 떠들어대니까, “나도 그 진가를 생생하게 인정하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음반이 풍기는 은밀한 아우라에 무의식적으로 끌려들어가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감격의 순간’이 찾아 든다! 어느 날 갑자기 “핑크 플로이드는 정말 대단한 밴드구나”라는 깨달음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든 노래가 심오한 의미로 가득 찬 것 같다는 ‘발견’의 순간이 오고, 그 순간을 깨닫는 자신이 너무도 좋아 미칠 지경이 된다. 이 위대한 밴드의 진정한 가치를 입소문으로부터가 아닌 ‘체화’의 과정을 통해 습득했다는 사실이 온몸이 떨리는 감격으로 다가온다. 보다 결정적인 것은 이때부터다. 과연 핑크 플로이드는 이 음반만 좋은가? 잡지를 뒤지고 인터넷을 열심히 클릭하여, 이 밴드가 [The Dark Side Of The Moon]말고도 다수의 기가 막힌 음반을 내놓았음을 알게 된다. 수소문하여, 그들의 음반들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Wish You Were Here] 음반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마음 속 내부로부터 억누를 길 없는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격심한 마음의 진동은 소름 끼치는 듯 몸 전체의 오한으로 확대된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이 밴드를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처절한 마음가짐이 굳어지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것을 ‘내 소유’로 만들고자 하는 집요한 노력을 시작한다. 그들의 음반을 손에 닿는 한 몽땅 소유하고, 멤버 각각의 프로필에 대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다. 어느새 핑크 플로이드의 유구한 역사는 마치 내 인생의 스토리처럼 뚜렷하게 각인되고,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눈앞에 펼쳐지듯 훤하다. 하지만 이토록 강렬한 학구적 정열은, 핑크 플로이드라는 한 뮤지션으로 그치지 않는다. 핑크 플로이드가 속해있는 ‘카테고리’인 ‘프로그레시브 록’ 안에는 이들 말고도 자웅을 겨루는 쟁쟁한 라이벌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킹 크림슨, 예스, 제네시스, 뉴 트롤스 등… ‘감히’ 핑크 플로이드와 우위를 다투는 이들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를 길 없다. 한 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된 ‘탐구’의 세계는 관련 뮤지션, 관련 장르로 곁가지를 뻗친다. 그리고 이러한 순례는 장르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탐구의 영역을 확장시켜가던 어느 날, 이 세상엔 정말 너무도 많은 음악의 형태, 너무도 많은 거장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레드 제플린이 있고, 주다스 프리스트가 있고, 슬레이어, 메탈리카, 건스 앤 로지스, 너바나, 라디오헤드 등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알고 싶은 욕망에 빠져, 급기야 낮과 밤이 혼동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부터, 단순한 ‘취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즉 ‘애호가’에 가까웠던 삶이 돌연 험난하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매니아’의 길로 빠지게 된다. ‘매니아의 인생’을 사는데 있어 가장 곤혹스러운 점은, 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첫째가는 요소로 돈이 많이 든다는 것. ‘매니아’와 일반 ‘애호가’를 구분 짓는 가장 뚜렷한 요소 중 하나로, “아낌없이 투자를 할 각오가 되어있느냐”의 유무다. 음악 분야의 경우, 매니아라 불리는 자들은 ‘mp3’라는 수단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언제나 CD를 고집하며, 그것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내 라이센스 음반보다는 해외 수입 음반을 선호한다(좀 더 예민한 매니아들이라면 같은 수입 음반이라도 그 음반이 어디서 생산되었느냐(미국이냐, 일본이냐, 영국이냐, 프랑스냐 네덜란드냐…)에 따라 미묘한 음질의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어디 음반에만 집착하는가? 음악 관련 인터넷 자료를 아무리 뒤져도, 국내에서 발간되는 잡지를 섭렵해도, “알고 싶다”는 허기진 욕구는 달랠 길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이 글에서는 ‘어느 날’이라는 순간적 포인트가 꽤 중요하다), “이래선 도저히 안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해외 관련 잡지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음악 매니아의 경우, 다음과 같은 일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완성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아침에 기상하여 컴퓨터를 켜고 음악 관련 사이트(웹진, 동호회 등)를 돌아다니며 간밤에 무슨 새로운 소식이 없나 체크한다. 또한 날마다 날아오는 ‘Rolling Stone Daily’ 이메일을 통해 해외 팝?록 뮤지션들의 최신 동향을 체크한다. ‘아마존(Amazon)’ 사이트에 가서 새로 발매된 음반이 뭐가 있는지 파악한다(아마존에서 수시로 발송하는 ‘뉴스레터’ 또한 매우 유용한 자료다). 웹 서핑을 통한 완벽한 상황 판단이 끝난 후, 바깥으로 나선다. 인터넷상으로는 완전하게 상황파악을 마치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북지역 거주 음악 매니아의 경우, 국내 음반업계의 동향 파악을 위해 즐겨 들리는 곳으로 종로 및 광화문 지역을 첫손으로 꼽는다. 핫 트랙스(교보문고), 뮤직랜드 등 규모나 내용 면에서 확실함을 자랑하는 대형 매장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보문고 내 음반 매장인 핫 트랙스는 교보문고의 수입 잡지 코너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어, 매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음반 매장에 들러 무엇이 나왔나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음반을 만지작거리며 때로는 구입하기도 하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반드시 서적코너에 들러, <롤링 스톤>, <스핀>, <모조>, <Q>, <CMJ> 등 영미 유수의 음악 잡지가 새로 나왔는지 빈틈없이 확인한다. 집 앞에서, 열흘 전 주문한 CD, 국내 판매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로 인터넷을 통해 정기 구독하게 된 해외잡지, 그리고 뮤지션 관련 서적 등등이 잘 도착했는지 우편함을 열어본다. 집에 들어와서는 주섬주섬 챙겨온 물건들을 기쁜 마음가짐으로 끌러보며 나만이 창조해낸 행복한 세상에 피곤한 몸을 누여본다.”

생활이 이렇다 보니, 매니아는 늘 자금 부족에 시달려 음반(과 그에 관련된 물품) 이외의 것에는 눈을 돌릴 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매니아’라 불리는 자들의 행색을 보면, 가혹하게 말해 ‘꾀죄죄’하기 짝이 없다. 늘 부스스한 머리, 빨래도 안 하는지 후줄근하기 이를 데 없는 티셔츠와 청바지, 고린내 나는 양말과 운동화 등… 하지만 매니아들은 자신의 초라한 행색이 한없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세속의 혼탁한 공기에 찌든 자들은 언제나 ‘유행’에 집착하며 ‘영혼이 없는 삶’을 살아가느라 병들어가지만, 오직 나 자신만은 ‘순수한’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 속에서 매니아들은 세상이 자신들을 보고 뭐라 하든, ‘초월적인 구도자의 삶’을 지향한다. 이들에게 두려운 것은 단 두 가지. 일정한 시기에 어김없이 날아들어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신용카드 결제 청구서와, 몹시 부당하게도 자신을 ‘폐인’으로 취급하려 드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뿐이다.

그런데 광범위한 인정과 지지를 받기는 힘들지만, 내면적인 뿌듯함을 만끽하며 삶을 영위하는 ‘매니아의 삶’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음악 매니아의 경우 ‘30대’를 분수령으로 일대 위기가 오는 것 같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삶을 살아가는 한 불가피할 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인간 취급’을 받으며 온전히 살아가려면 세상이 요구하는 것, 즉 학교를 졸업하고, 온전한 직장을 잡고, 적당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내 집을 마련하고… 하는 일련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사회라는 시스템이 대내외적으로 합의하여 내놓은 이 탄탄한 공식은, ‘사회구성원’을 자처하는 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벗어날 길 없는 엄격한 룰이기도 하다. 매니아들의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내심 영원한 ‘낭인’의 삶을 누리고픈 욕망으로 가득 차 있지만, 주변의 압력을 도저히 버텨낼 길이 없다. 더구나 과도한 물품 구매로 늘어만 가는 빚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절박함도 한 몫 한다. 더구나 교제 중인 이성 친구가 있는 경우(물론 상대적으로 낮은 확률이다..), 상황은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하기 쉽다.

그리하여, 결국 매니아는 취직을 한다! (요즘 같은 ‘취업대란’의 시기에 다소 ‘시의성’이 적절하지 못한 상황 설정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너저분하던 머리는 정성스럽게 이발과 헤어젤로 다듬어 넘기고 드라이크리닝에다 다리미로 가다듬은 양복 차림새는, 저 인간이 과연 언제 ‘오타쿠’였나 도저히 믿기지 못할 정도로 깔끔하기만 하다.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일주일이 언제 다 지나갔나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게 지내고, 일상 생활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고 집이란 잠자는 곳일 뿐인 사회 생활의 아수라장 속에서, ‘매니아 적 삶’은 점점 ‘과거지사’로 희석되어가기만 한다. ‘여가생활’은 어느 정도 용인해도 ‘취미생활’은 아직 ‘사치’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음반을 수집하고 해외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는 짓은 덜 떨어진 작태로 치부되기 쉽다. 한 마디로 말해 “옷이 생기냐, 밥이 생기냐?”라는 맹렬한 비난에 직면해도 변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대 위기를 맞이하여 ‘매니아’로 자처하던 이들의 80% 이상은 더 이상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나가떨어지고 만다. ‘일반인’의 삶으로 전환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이 삼십이 넘어서도 일관된 매니아의 길을 걷는 이는 사회 전체로 볼 때 극히 일부분. 그 중 상당수는 ‘시대와의 불화’를 기꺼이 감수하고 남들 보기에 ‘폐인’의 삶을 끌고 나가는 ‘백수’들이고, 나머지는 낮에는 남들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정상인’으로 위장한 채 피폐한 삶을 살다가, 밤이나 휴일이 되면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박쥐같은 ‘이중생활’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박쥐’들의 경우 ‘백수’들보다야 훨씬 윤택한 경제적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강점은 있지만,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아의 분열’. 즉 “진정한 나 자신은 무엇인가?”에 대한 혼란과 회의, 사회 생활을 하는 와중에 이따금씩 자신의 본질의 편린이 튀어나와 이로 인해 겪어야 하는 소외와 괴리, ‘이중생활’의 경계 끝머리에 서서 균형을 잡기 위해 발버둥질 쳐야 하는 고뇌 등이 한데 엉켜, 신경쇠약 직전으로까지 몰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갖가지 사회적 불이익을 받으며, ‘매니아’가 매니아임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자신을 이 모양 이 꼬락서니로 만들게 된 열광과 집착의 대상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자꾸만 아스라해져 가는 기억 때문일 것이다. 너무도 좋아 아무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절실한 애정을 품고만 그 운명적인 순간. 그리고 그 운명은 감성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결코 지워질 수 없게 단단히 뿌리가 박혀, 뽑아내려면 마치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고통을 맛보느니, 차라리 ‘낙오자’내지는 ‘부적응자’의 굴레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희생자적 정신이 온 몸과 정신을 사로잡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매니아’의 삶이 결국 헌신적인 ‘순교자’의 삶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순간의 기억’에 의존할 뿐. 찰나뿐인 강력한 기억을 붙잡겠다는 집착의 의지. ‘매니아’들은 ‘집착’에 유난히 민감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매니아들은 하루하루를 강렬한 사랑의 기억으로 묶어두고 싶은 충동으로 아슬아슬한 삶을 이어나가는 지도 모른다. 주변 시선으로부터의 멸시와 몰이해에도 불구, 이토록 내면으로 강렬하게 잦아드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쩌면 미리 알지 못했음에도 이미 “인생은 허무하고 슬픈 것”이라는 진리를 운 좋게 깨달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속절없는 삶 속에서 따스한 불꽃을 피우려는 처절한 몸부림. 이것이 바로 매니아의 정의다.  
 

매니아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20개의 추천트랙
   
Ex Cowboy  -Mogwai        
발단-위기-절정-결말의 예정된 수순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핵폭풍. 포스트 록의 진수.

God Save The Queen -Sex Pistols        
록의 극한. 이 노래를 뛰어넘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Transmission -Joy Division        
염세적인 냉정과 절망적인 열정이 한자리에 공존하는 전대미문의 살풍경.

Shine On You Crazy Diamond -Pink Floyd        
이 노래만큼 아쉬움과 그리움의 감정을 절묘하게 구체화시킨 경우는 없다.

Resolution -John Coltrane        
영혼의 구원은 가능한가? 존 콜트레인은 심각한 의문과 망설임 속에서도 치열한 자기 탐구를 늦추지 않는다.

Directions -Miles Davis        
이 난해한 곡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온몸을 마구 뒤흔드는 뜨거운 기운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So Tender -Keith Jarrett        
재즈의 서늘한 우아함이 가장 명징하게 나타난 최상의 예

I Got The Blues -The Rolling Stones        
위대한 자기 고백. 듣는 이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올갠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시라.

Crosseyed And Painless -Talking Heads        
끝간데를 알 수 없는 마력을 뿜는 아프리카 리듬에 매혹된 서양인들의 진심어린 존경

Change Your Mind -Neil Young        
끝처절한 아름다움이 록의 소음을 만나 연꽃을 피우다.

G-Spot Tornado -Frank Zappa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무정형 연주의 정점

Hate To Say I Told You So -Hive        
섹스 피스톨즈 이후의 록의 극한대가 다시 영겁회귀를 시작한다.

The Concept -Teenage Fanclub        
열정 섞인 우아함이 듣는 이를 달뜨게 만드는 트랙

Long Distance Runaround -Yes        
록음악이 이렇게도 아기자기 할 수 있단 말인가?

Rush -Xanadu        
격렬하면서 웅장한 판타지의 진수. ‘무아지경’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정확하게 들어맞는 경우는 없다.

Kashmir -Led Zeppelin        
록의 비트가 동양음악의 신비함과 경건함과 만나 한 수 배우기에 이른다.

The Name Of The Game -Badfinger        
사랑이 생각만큼 풀려나가지 않을 때, 이 노래는 상처받은 마음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Janis -Focus        
상념에 잠긴 듯한 마음의 표상을 침착하게 풀어내는 진귀한 트랙

Nobody Knows When You’re Down And Out -Derek & The Dominos        
록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카타르시스.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끝에 문득 아스라한 깨달음이 피어오른다  

Au Lait -Pat Metheny        
나른한 몽환적 분위기에 온몸이 안개에 휩싸이는 듯한 느낌. 영원히 이 느낌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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