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이야기

어릴 적부터 큰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편이다.
고기 대신 생선을 즐기는 것이나, 단추 달린 옷을 싫어한다거나 하는 류의 생활습관 면에서
큰언니의 성향은 나에게도 유행처럼 옮겨오곤 했었다.
지금은 가족들이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나의 취향은 우리집에서 거의 독보적이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유일한 큰 언니의 영향은 바로 단추를 싫어하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교복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5년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교복 때문에 매일 단추 옷을 입었어야 했는데
그 시절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자율복장을 하게 된 이후부터 옷을 고를때의 1차 판단 기준은 무조건 단추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여밈의 수단은 후크, 지퍼, 끈 또는 리본, 그것도 아니면 그냥 밴드 스타일이 좋다.
이런 까닭에 직장 생활 10년차이지만 정장 스타일을 싫어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튼 누구나 한벌 씩 가지고 있을 베이직 아이템인 그 흔한 셔츠한장 제대로 안 갖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살아가면서 단추와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전혀 없을 수는 없으나
평상시에는 그냥 잠깐 거슬리다가도 그러려니 무덤덤하게 보내게 되는데
어제는 머리끝까지 온 신경이 거슬리는 하루다 보니
퇴근길의 만원 버스 안에서 부닥거리게 되는 옆에 선 아저씨의 양복 재킷 단추가 너무나도 거슬리는 게 아닌가.

피곤함에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고 골라 탄 버스인지라 나는 좌석을 확보하고 앉은 상태지만
강남역을 통과할 즈음에 9700 버스는 그야말로 콩나물 시루와 진배없다.
그 상황에서 출입문 바로 뒷자리의 공간이 붕 뜬 좌석은 그야말로 서서가는 사람들에게 황금자리.
이리 비비고 저리 부벼대는 사람들 틈에 그럭저럭 참으며 일산 초입까지 왔으나
한 아저씨가 벗어 들고 있는 재킷의 단추가 자꾸만 내 팔을 스치는데는
정말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 그대로 1분 1초를 참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어깨를 좁히고 몸을 움츠려 그 아저씨와의 간격을 넓혀 보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공간을 확보했다며 밀치고 오는 아저씨의 양복 공격에
백석에 도착해 내릴 즈음에는 신경이, 정신이,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렸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오는 그 잠시 잠깐의 시간동안 든 생각은
아무래도 내가 단추에 대한 혐오(?)를 이겨내는 날이
진짜로 내가 어른이 되는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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